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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은 조선 성리학의 기반을 다진 주리론의 대표 주자이며, 이이는 이황의 후배로 성리학의 토대를 마련한 이기론의 대표주자이다. 성리학을 어느 측면에서 바라보고 사회 개혁과 변화에 접목하기 위해 강조한 사항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음 내용을 살펴보며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황의 성리학
조선 성리학 발달의 기반을 다진 퇴계 이황은 이기론에서 이의 우위를 주장한 주리론의 대표 주자이다. 이황은 조선 시대 사회 지도 세력으로 부상한 사림 세력 활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자신보다 26살 연하인 젊은 유학자 고봉과의 13년 간편인지를 주고받으며 사단칠정에 대한 철학 논쟁에 참여함으로써 신선한 바람을 불러왔다.
퇴계 이황의 주리론에서 가장 큰 특징은 이와 기를 엄격히 구분하고, 이는 귀하며 기는 천하다는 '이기 기천'을 강조했다. 사회와 당쟁으로 혼란했던 사회를 바로 잡고자 성리학의 절대 원리와 근본정신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힘썼다. '사단'을 '이'에 '칠정'을 '기'로 본 이황은 사단과 칠정, 이와 기, 도심과 인심, 성과 정을 이원화했다. 이에 초점을 둔 인간과 우주를 해석한 주리론은 고봉 기대승과 주고받은 편지로 그 의미를 알 수 있다.이황과 고봉의 사단 칠정 논쟁
이황과 고봉의사단칠정논쟁은 주자학을 넘어 독자적 성리학 발달 기반에 기여했다. 사단은 인간 보성에서 우러나오는 4가지 마음으로 수오지심(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 측은지심(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사양지심(양보하고 공경하는 마음), 시비지심(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이며, 칠정은 인간의 7가지 감정으로희(기쁨)(노여움), 구(두려움),애(사랑)(미움).
정지운의 '천명도설'에서 이황과 고봉의사단칠정논쟁은 시작된다. 이황은 '사단은 이가 발현해서 드러났으며, 칠정은 기가 발현해서나타난 것이다'라고 하였으나, 고봉은 '사단이란 칠절 중에서 드러나서 맞는 것'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사단이 칠정 안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며, 사단과 칠정의 분리를 반대했다. 이에 이황은 타협 의견으로 '사단의 발현이 이로 선하며 칠정의 발현은 기가 함께하기 때문에 선악이 있다'고고봉에의견을 보냈으나 본인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사단칠정에관한 이황과 고봉의 논쟁은 13년간 지속되었는데 논쟁을 통해 진리를 찾는 태도에서 소통의 정의를 찾을 수 있다.율곡 이이의 이기론
율곡 이이는 이황이 기반을 다진 성리학을 조선에 토착화했다. 이이에게 성리학에 대한 철학은 사화와 당쟁으로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는 조선 사회를 개혁에 원동력이 되었다. 고봉 대기 승과 동일하게 이이는 칠정과 사단을 분리할 수 없으며 사람의 감정은 정이며 중에서 선한 것은 사단으로 판단했다. 이황과 달리 이이는 기가 발하여 이가 기를 타는 것만 일관되게 인정하는 '기발이승일도설'을 주장했다. 이는 기의 주도하에 성립된 것이며 현상에서 떨어진 초월적인 것이라 보았다.
이이의 철학적 입장은 사회 개혁론으로 연결되며, '동호문답'의 저술로 왕도 정치를 위한 지속적 사회 변화와 철인 정치 사상을 주장했다. '만언봉사'라는 상소문을 올려 제도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는데 시스템 개선으로 조선 시대의 쇠퇴기 극복을 위해 노력했다. 이이는 성리학의 기본 원칙은 고수하고 제도와 법을 변화시키려 한 측면에서 급진적 개혁이 아닌 점진적 개혁을 추구한 것을 알 수 있고, 뛰어난 인재 등용과 신하의 의견을 수렴하여 사회 개혁에 반영하는 대동의 장이 마련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이이의 '이기일원론'과 이황의 '이기이원론'
퇴계 이황은 '이기이원론'을 율곡 이이는 '이기일원론'을 주장했다. 이황은 하늘의 진리를 알고 실천을 통해 하늘과 사람을 하나로 연결하는 철학을 갖고 있으며, 율곡 이이는 우주보다는 땅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을 개혁하기 위한 '치인'에 집중했다. 철학적 사상은 성리학으로 동일하지만 실천 방법에 대한 이견으로 서로 간의 이견은 좁히지 못했다. 하지만 이황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후배로 이이를 지목했으며 '후생가외'라는 표현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