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학와 도덕

윤리학 관련 통찰과 적용 등

  • 2024. 4. 4.

    by. 노란 민들레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 소크라테스와 그리스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였으며, 도덕과 미학, 정치와 형이상학, 논리와 과학을 포함하는 서양 철학의 포괄적인 체계를 창조하였다. 또한 그의 윤리학은 현대의 덕 윤리학과 함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플라톤은 이상주의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을 소중히 생각하는 현실주의자이다.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따로 존재하는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좋은 삶이 실현되어야 하는 철학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 목적에 대한 탐구력은 목적론적 세계관의 철학적 토대를 형성하였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질문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윤리학의 핵심은 인간이 선의 목적을 갖는 것으로 추구되어야 할 궁극적인 목적이 있어야만 한다고 판단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사는 목적은 행복이라고 보았으며, 행복을 '최고의 선'이라 불렀다.

    '유아 이모나'란 그리스어로 행복을 의미하는데 그 깊은 뜻은 '잘 존재함'이다. 도구로서의 잘 존재함이란 그 고유 기능에 맞게 쓰이는 것이며, 인간의 행복은 이성의 능력을 발휘하여 실현하는 것이며 즉 '덕'이라고 했다. 덕을 가진 인간이 이성적 기능을 훌륭하게 발휘하는 사람이며, 덕관 일치하는 이성적인 활동이 인간의 행복한 삶으로 규정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육을 통해 시작되고 성장하는 지적인 덕과 습관의 결과로 형성되는 품성적, 도덕적 덕으로 구분하였다. 지성적 덕을 품성적 덕과 도덕적 덕보다 우위에 두었지만 도덕적인 덕을 강조했다. 인간은 도덕적 본성을 갖추고 태어나지 않아 교육과 지속적인 실천을 위해 덕을 습관화하는 노력이 인간의 탁월성을 발휘하도록 이끈다고 보았다. 이런 생각은 그의 윤리학에서 중심을 이루는 '중용'의 덕으로 구체화하였다.

    욕망, 분노, 질투, 환희 등을 정념이라 하는데 인간의 성품은 정념에 달려있다. 이성으로 정념을 조절하는 것이 정념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고 유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특히 생활 영위에 교육목적을 두기도 했다. 자유교육을 중시하였는데 생산적 교육이 아닌 여가를 이용하여 읽기, 쓰기, 음악, 체육 등 교양을 함양하도록 교육하는 것을 적극 권장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교육 방법은 합리적 교육을 지향하였고 이성 교육에 도달하는 방법이 진정한 교육으로 체육, 교수, 훈육 3분야로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념을 선하고 좋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 이성이라 했다. 정념에 있어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것은 좋지 않으며 '중용'이 바람직하고, 중용을 쫓는 것이 윤리적 덕을 쌓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사림이 덕이 있다면 '이상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교육과 정치를 통해 덕이 있는 사람이 되고, 도덕적 삶을 완성하기 위해 국가가 필요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에피쿠로스의  진정한 쾌락

    에피쿠로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정복에서부터 로마의 이집트를 정복한 시기안 헬레니즘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 세계관의 혼란을 겪으며 개인들은 고통, 죽음,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찾는 철학을 발전시켰다. 이로부터 발전된 것이 에피쿠로스학파이며 이 학파는 예시고 로스 이 집과 정원에서 열리기도 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을 긍정이 아닌 부정적 방법으로 사용했으며, 인간이 고통스러우면 불행해지고 불행하지 않는다면 행복하다는 것의 의미한다고 했다. 즉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고통은 욕망에 기인하며 욕망만을 추구한다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 욕망을 버리면 되고 충족되지 않은 욕망은 사라진다. 즉 고통인 없는 상태, 어떤 욕망도 없는 상태가 최상의 쾌락이며 이를 '번뇌 없는 평정'이라 칭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에피쿠로스는 육체적 쾌락은 지속성이 없고, 고통을 초래할 뿐으로 '쾌락의 역리'를 주장했는데 소박한 쾌락주의적 측면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쾌락은 환락이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해방이었다. 순간적인 쾌락을 추구했던 퀴레네 학파와는 다르게 연속적이고 정적인 쾌락을 추구했다.

     

    에피쿠로스는 '아포니아'와 '아타락시아'로 인간의 행복 개념을 정의했다. 아타락시아는 육체적인 욕망과 고통의 상태에서 벗어남을 말하며, 아타락시아는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평안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행복을 추구한 에피쿠로스는 사회로부터 떨어져 은거하며 조용히 삶을 영위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와 작은 공동체 내에서 자율적이고 소박한 삶을 권장했다.

    에피쿠로스는 진정한 쾌락은 신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을 신이나 운명 등 초자연적 힘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어 불안한 요인을 없애고자 했고 신의 존재 자체를 거부했다. 삶의 주인공을 인간 자체로 만들며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 꾸려나가도록 강조했다. 에피쿠로스는 세계 내의 모든 구성이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즉 원자론을 통해 인간을 죽음의 두려움, 공포에서 벗어나게 했다.

    헬레니즘의 혼돈된 시대를 반영하여 발달한 에피쿠로스학파는 인간의 행복을 찾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행복은 소박한 쾌락, 고통과 욕망, 죽음을 벗어난 마음의 평화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쾌락주의와 금욕주의 철학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행복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