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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윤리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70년경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며 서양 철학의 첫 번째 인물이다. 당시의 소피스트들처럼 상대를 주관적, 상대적 해석하는 태도를 배격하고, 객관적이고 보편성을 갖춘 진리를 찾아서 이상주의적, 목적론적 철학을 수립하였다.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 청년들에게 열정적인 반어와 철학적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훈련했다. 청년들이 스스로 인생의 가치와 의미 있는 삶을 찾아갈 수 있게 도와줌으로써 스승이 합법적으로 영혼을 개입하는 산파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불리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무지를 자각하라는 의미이며 진리 앞에 겸손한 자세로 절대적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주장했다. 무지를 자각 하는 것은 지식을 얻기 위한 첫 단계라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덕의 실천과 아는 것, 행복을 하나로 보았으며 통해 덕을 쌓을 때만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 지속해서 물어봐 주면 진리 즉 알레 테이아를 상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 청년들의 조력자를 자청한 소크라테스를 '최초의 윤리 교사'라 칭했다.소크라테스의 지덕일치, 지행합일
소크라테스의 윤리 철학의 핵심은 지덕 일치와 지행합일의 개념으로 현대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덕 일치는 지식과 덕이 일치한다는 의미이며 진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덕을 실천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지행합일의 개념은 지식과 행동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로 올바른 지식을 가진 사람이 지식에 따라 바로 행동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교육의 개념에 도입되어 학생들이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생활 행동에 적용하도록 하고 격려하는 점에 중점을 두고 있는 현대 교육에서 나타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을 덕과 동일하게 '지덕일치'로 바라봤다. 덕은 탁월성으로 이해되었으며, 보편적인 인간의 덕을 얻고자 한다면 삶의 기능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용기, 절제, 정의 등의 덕이 무엇인지 정확한 정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편적 진리를 발견하고 실천하는 것, 바르게 알면 반드시 행하는 것 '지행합일'로 귀결된다.
이러한 관점은 '스토아학파'로 계승되었고, 기독교 윤리관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관과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을 갖고 있기도 하여 의견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의 사상에 방향 지은 인물이었으며,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 중 하나는 철학 한다는 행위 모범을 보인 것이다. '하루하루를 반성과 성찰을 통해 살아가고 있나', '사회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나' 사회가 무엇인지 고민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통해 우리 현대인들을 지혜를 사랑하는 행위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플라톤의 이데아
플라톤은 왜 이상 국가관을 제시하게 된 걸까? 당시 아테네의 민주정은 우매한 대중들에 의해 대중영합주의 정치로 전락하여 진리를 알고 있는 철학자의 지혜로운 통지기 필요했다.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독배로 죽게 한 현실 정치에 대한 충격과 혐오를 갖게 된 플라톤은 아테네의 민주 정치보다는 스파르타와 같은 강력한 구조의 국가가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추구하였지만 표현되지 않았던 '진리'를 '이데아'로 구체화하였다. '이데아'는 플라톤의 철학 개념이며 '이대인(보다, 알다)'의 파생어다. 보이는 것, 모양, 모습, 물건의 종류 등을 의미하기도 했으며, 생성하는 감각은 이데아를 본떠 이루어지지만 세계는 이성에 의해 인식되는 세계를 의미하고, 진실한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이성과 감각, 태양과 동굴 안의 그림자, 이데아와 현상, 영원불변의 세계와 지속해서 변하는 세계를 나누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주장하였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세계관으로 이어져 서양 철학의 중요하게 자리 잡게 된다.플라톤의 이상 국가
플라톤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구성원이 있는 국가가 정의로운 국가이며 이상 국가라 생각하였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청년들 개인의 삶에 문제의식을 던져준 것을 확장하여 훌륭한 국가, 좋은 사회, 올바른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플라톤은 개인마다 타고난 자질이 다르므로 그에 따라 한 가지 일에 배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자 자신의 직업에 종사함으로써 조화롭게 나라 전체가 한 나라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한 국가에서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소임을 다하는 것이 기본이며 이는 부분적으로 동양 사상가 공자가 주장하는 정명과도 통한다. 정의로운 국가는 완벽한 국가를 모범으로 삼아야 하고 통치자, 수호자, 생산자의 세 부분이 조화를 이루어 지혜의 덕, 용기의 덕, 절제의 덕이 실현되는 사회와 인간을 만든다고 보았다.
통치자가 되는 철학자는 '좋음의 이데아'를 인식한 사람이며, 정의의 덕을 갖춘 이성과 지성이 탁월하고 각계각층이 지신의 역할을 충실하고 조화롭게 이룰 수 있는 지도력이 있는 사람으로 상정되었다. 플라톤의 철인 정치가 독재 정치로 흐르게 될 경우의 문제점이 현대 민주주의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스승인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건넨 아테네 민주주의는 중우 정치 즉 포퓰리즘 정치였다는 것이 플라톤 생각의 의미였다. 좋은 정치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탐구로 '선의 이데아', '이상 국가' 라는 명제를 놓고 , 수호자 중에서 선발된 가장 완벽한 철인으로 국가를 통치하게 하도록 하는 것은 현대사회의 만연한 포퓰리즘 정치를 비판하는 견해로 작금의 정치인들이 많은 반성과 고민을 가져해 할 것이다.